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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정치의 조력자, 소헌왕후 리더십 도성 화재때 위기 극복·민심 수습… 세종의 최고 조력자 소헌왕후 “세종이 진정으로 은애(恩愛)한 여인은 누구였나요?” 조선왕조에서 후궁을 제일 많이 둔 왕이 누구인지 묻는 분이 종종 있다. 세종을 염두에 두고 묻는 그분들에게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곤 한다.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왕은 연산군이고(14명), 그다음이 성종이다(11명). 세종은 8명의 후궁을 두어 숙종과 함께 공동 5위다. 세종의 사랑을 받은 여인으로 먼저 떠오른 이는 신빈 김씨이다. 그녀는 궁궐의 여종 출신으로 세종의 눈에 띄어 6남 2녀를 낳고 정1품의 품계까지 받은 ‘세종시대의 신데렐라’다. 그런데 세종에게서 사랑은 물론 존경까지 받은 여인은 소헌왕후 심씨이다. 그녀는 1408년(태종8)에 두 살 연하의 세.. 더보기
시민 눈높이 맞는 정책 위해 ‘문화재 배심원’ 제도 도입해야 “세상 모든 것, 백성의 눈과 귀 통해야”… 현장 민심 정책에 반영 “우리라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문화재 위원들이 결정하면 우린 따를 수밖에 없어요.” 며칠 전 세종영릉을 함께 걸었던 문화재청 직원의 얘기다. 문화재 복원에 관한 필자의 칼럼을 읽었는데, 문화재 심의 회의의 분위기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아주 딴판이라고 말했다. 광화문만 해도 현장에서는 ‘현판을 한글로 바꿔서 세종정신과 한글을 빛내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문화재 위원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말을 꺼내면 ‘문화재 복원의 개념조차 없는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라고 했다. 세종영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문화재의 보호와 진정성 회복’을 이유로 능침탐방로를 철거하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세종을 찾아온 분들의 .. 더보기
광화문 현판, 세종이라면.. 취지는 살리되 시대 맞게 만들어 가야 한다… ‘열린 국가경영’ “우리가 중시한 것은 그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와 성지(聖地)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철저한 기록이었지요.” 1997년 9월에 붕괴된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보존·복원업무를 담당한 세르지오 푸세티의 말이다. 지진으로 천장이 붕괴되면서 매몰된 5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그에 따르면 성당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성지로서 존엄성’을 살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그 지역 가톨릭 교구장과 문화재 전문 감독관(soprintendente), 그리고 문화유산안전청(MIBAC) 담당관들로 구성된 복원위원회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활동했다. 그런데 위원들 사이의 의견 대립, 즉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