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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민 눈높이 맞는 정책 위해 ‘문화재 배심원’ 제도 도입해야

“세상 모든 것, 백성의 눈과 귀 통해야”… 현장 민심 정책에 반영

 

“우리라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문화재 위원들이 결정하면 우린 따를 수밖에 없어요.”

 

며칠 전 세종영릉을 함께 걸었던 문화재청 직원의 얘기다. 문화재 복원에 관한 필자의 칼럼을 읽었는데, 문화재 심의 회의의 분위기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아주 딴판이라고 말했다. 광화문만 해도 현장에서는 ‘현판을 한글로 바꿔서 세종정신과 한글을 빛내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문화재 위원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말을 꺼내면 ‘문화재 복원의 개념조차 없는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라고 했다.

 

세종영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문화재의 보호와 진정성 회복’을 이유로 능침탐방로를 철거하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세종을 찾아온 분들의 항의가 만만치가 않다고 했다. 무인석 등 문화재의 훼손이 우려된다면 경로를 약간만 수정하면 될 터인데, 아예 탐방로를 없애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항의였다. 울산에서 오셨다는 한 선생님은 가운데가 텅 빈 풀밭을 오른편에 끼고 멀리 능침을 바라보며 걸었던 몇 해 전의 기억을 말씀하셨다. 삼가는 마음으로 능침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세종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는데, 아예 접근을 막아 놓아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렇게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갈 줄 알았으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문화재청 직원과 울산에서 온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새삼 깨달은 건 문화재 전문가들의 닫힌 사고다. ‘소중한 유산인 문화재를 무지한 대중으로부터 우리 전문가가 지켜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수원화성을 쌓을 때 정조가 말했듯이, 성곽과 같은 문화재를 지켜내는 사람은 결국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문화재 위원이나 문화재청 공무원들은 어느 시기가 되면 떠나간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 문화재와 더불어 살아간다. “나라에서 취하는 조처가 온당하면 인심의 기상(氣象)이 편안해”지고, 민심(衆心所向)도 자연 성을 사랑하게 돼 “성곽 역시 저절로 튼튼해질 것”이라는 정조의 말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세종이 예악을 정비하면서 크게 참조했던 책이 북송 사람 진양(陳暘)의 ‘악서(樂書)’다. 이 책을 보면 예악의 형식을 너무 강조하면 인심을 잃게 된다. “예와 악은 모두 인심에서” 나오는데,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인심을 외면하고 예법이라는 형식만 고집하면 예도 잃고 인심도 떠나간다는 것이다. “하늘이 보고 듣는 것 역시 모두 백성의 눈과 귀를 통해서”다. 진양에 따르면 설혹 잘못을 범한 백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다시 돌이켜(反) 예악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예악이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참도를 없애 세종의 능침 근처에 못 가게 하는 것은 백성들의 그 경험을 차단하는 것이고, 눈과 귀를 막는 것과도 같다. 다른 사람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말만 듣고 돌아가라는 얘기다.

 

나는 차제에 문화재위원회를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국사학, 건축학, 고고학 등 전문가로만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의 눈과 귀로는 시민들의 높아진 문화적 수요를 파악할 수가 없다. 지역 주민 등이 ‘문화재 배심원’으로 참여해 현장의 목소리를 문화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몇몇 언론인이나 관광관계자가 형식적으로 참관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더 많은 시민배심원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문화재 복원이나 관리방향 등을 결정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이 어떤 결론이 최선인가 아닌가를 좌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특정의 전문지식보다는 대다수 사람의 감각(sense)과 의견(opinion)인 경우가 많다. “건물에 대한 최종 평가는 건축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활하게 될 사람들이 내리며,” 차려진 음식의 최종 평가자 역시 “요리사가 아니라 손님”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반영된 새로운 문화재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71001032630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