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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안목으로 표현하기

새로운 조선에 맞는 새로운 인간형 만드는 게 변화의 목표였다

 

“전통이란 눈에 보이는 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꼴을 지탱하는 정신이다. 그 정신을 건져 올려 현대 건축에 살려내는 게 참된 의미의 전통 계승이다.”

콘크리트로 에워싼 간결한 공간에 빛과 그림자로 ‘비움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건축기법이 혹시 일본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대답이다. ‘일본’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오히려 자신은 일본 전통의 목조건축과는 거리가 먼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멘트, 물, 자갈, 철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유로운 꼴을 빚어낼 수 있는 게 콘크리트 건물인데 그것이 자기 생각, 즉 일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몸에 밴 감성과 젊은 시절 세계 여행을 하면서 생겨난 안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道)일 뿐이라고 했다.

 

다음 주 월요일(6. 24) 건국대에서 열리는 세계한국학대회 세종세션에서 발표될 논문들을 읽는 내내 떠오른 사람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 그는 교토(京都) 등지 고건축의 어느 부분을 되살려내려는 생각 자체를 반대했다고 했다. 다만 건축 여행 중 “강하게 끌렸던” 일본의 아름다움을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등에게 배운 안목으로 표현했을 뿐인데, 세계 사람들은 “가장 강렬하게 일본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번 학술회의 발표 논문들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는 ‘강하게 끌리는 부분’을 드러내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적인 안목으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다는 게 2000년 이후 지금까지 20년간 세종학 연구 분석 결과다. 매년 32편의 논문과 저술이 생산됐지만 대부분 훈민정음이나 한국 음악 또는 과학기술 성과에 집중됐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 즉 그 많은 성과를 어떻게 이뤄냈는지에 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한 세종의 정책이나 싱크탱크 집현전 활용, 그리고 창의적 회의방법인 경연(經筵)을 활성화시킨 것 등 ‘어떻게’를 드러낸 연구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안목으로 소개한 연구는 미미하다.

이 점에서 기조강연 주제인 ‘세종의 조선사람 만들기’는 독보적이다. 강연자인 함재봉 박사는 세종시대를 흔히 ‘태평성대’라고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 시대만큼 오랜 전통과 관습을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낯선 외래 사상과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시킨 시기는 드물었다고 한다. 비록 외적의 침입이 없었고 왕조교체기의 혼란과 왕실 내부의 권력투쟁도 수그러들었지만 사회제도와 관습, 종교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급진 개혁이 극에 달했던 격변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목표는 새로운 나라 조선에 맞는 새로운 인간형 만들기였는데,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준비되고 추진됐는지에 대한 그의 발표가 기대된다.

주목되는 것은 함재봉 박사의 연구 시각이다. 그에 따르면 ‘조선사람’ 내지 ‘한국사람’ 정체성 연구의 목표는 한국인의 변치 않는 본질을 밝혀내는 게 아니다. 한 개인도 다양한 사건의 영향을 받아 여러 요소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거대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한두 가지 불변의 본질에서 찾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적인 것은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문제가 있다. 분명히 있으며 늘 변화하는 ‘그것’을 여러 담론을 통해 발견해 가고, 무엇보다 우리가 더욱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더 한국적인 것’을 다듬고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공감한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안목으로 표현해낼 가능성을 나는 그 논문에서 발견했다. 발표되는 강연과 논문들을 세종리더십연구소 홈페이지(www.allthatsejong.com)에 학술회의가 끝난 후 영상과 함께 올릴 계획이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61901032630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