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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공리공담]정조의 헤드십, 세종의 리더십(배병삼, 영산대 교수) 경향신문 2012-12-06 [공리공담] 정조의 헤드십, 세종의 리더십 배병삼 | 영산대 교수 정치사상 조선후기 정조는 군사(君師)라, ‘임금이자 스승’으로 불렸다. 임금이란 지고의 권력자이고, 스승은 최고의 지식인이다. 권력에다 지식을 겸한 ‘군·사’는 얼핏 플라톤의 ‘철학자·왕’처럼 정치가의 이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조정은 임금의 혼잣말로 넘쳐났다. 어느 신하도 ‘임금이자 스승’인 정조의 말에 감히 대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도 실은 정조의 ‘어용 지식인’에 불과했다. 외려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영의정 심환지와의 비밀편지 속에서 그의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 정조가 죽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기의 경직된 반동정치는 조선을 일제.. 더보기
화성 건설의 공사 보고서 <화성성역의궤> 화성 건설의 공사 보고서 화성성역의궤는 정조가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뒤에 그 공사에 관한 일체의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화성의 축조 공사는 1794년(정조 1) 1월에 시작하여 1796년 9월까지 계속되었다. 화성성역의궤는 공사가 끝난 1796년 9월부터 의궤를 편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국가의 주요 행사가 끝나면 이내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고 의궤를 편찬했던 기왕의 관례를 따른 조치였다. 화성성역의궤는 일단 그 해 11월 9일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화성성역의궤는 80만냥이란 거금을 투입한 대공사의 종합 보고서였으므로, 다른 의궤에 비해 분량이 많은 편이다. 또한 조선왕조의 문예부흥기인 정조대, 그 중에서도 가장 전성기에 속하는 1790년대에 만들어진 책이므로 그 내용이 상세하고 치밀한 것이 특징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