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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공리공담]정조의 헤드십, 세종의 리더십(배병삼, 영산대 교수) 경향신문 2012-12-06 [공리공담] 정조의 헤드십, 세종의 리더십 배병삼 | 영산대 교수 정치사상 조선후기 정조는 군사(君師)라, ‘임금이자 스승’으로 불렸다. 임금이란 지고의 권력자이고, 스승은 최고의 지식인이다. 권력에다 지식을 겸한 ‘군·사’는 얼핏 플라톤의 ‘철학자·왕’처럼 정치가의 이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조정은 임금의 혼잣말로 넘쳐났다. 어느 신하도 ‘임금이자 스승’인 정조의 말에 감히 대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도 실은 정조의 ‘어용 지식인’에 불과했다. 외려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영의정 심환지와의 비밀편지 속에서 그의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 정조가 죽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기의 경직된 반동정치는 조선을 일제.. 더보기
인간 세종이야기 [인간 세종이야기] 흔히 세종대왕이 후궁을 제일 많이 두었다 하나, 잘못된 말이다. 후궁이 제일 많은 임금은 연산군(14명)이고 2위가 성종(11명), 3위가 태종(10명)이다. 세종은 조선후기의 숙종과 함께 공동 5위이다(8명) . 그런데 세종은 후궁에게도 인간적이어서 좋아하던 후궁에게 신하들 몰래 따로 불러서 말없이 귤 하나를 쑥~ 내밀어준 얘기도 있다. (그 당시 귤이 귀한 것이었다.) 명재상 황희는 청백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임금이 사람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너무도 기분 나쁘게 점검하는 바람에 '내참 더러워서 뇌물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케이스다. 훈민정음 반포식을 축하하는 잔치 행사에는 집현전 학사 절반이 참석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와 임금의 요구사항에 시달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