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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화문 현판, 세종이라면..

취지는 살리되 시대 맞게 만들어 가야 한다… ‘열린 국가경영’

 

“우리가 중시한 것은 그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와 성지(聖地)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철저한 기록이었지요.”

 

1997년 9월에 붕괴된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보존·복원업무를 담당한 세르지오 푸세티의 말이다. 지진으로 천장이 붕괴되면서 매몰된 5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그에 따르면 성당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성지로서 존엄성’을 살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그 지역 가톨릭 교구장과 문화재 전문 감독관(soprintendente), 그리고 문화유산안전청(MIBAC) 담당관들로 구성된 복원위원회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활동했다. 그런데 위원들 사이의 의견 대립, 즉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돼야 한다’는 역사적 가치 보존론과 성당은 사람들이 배우고 기도하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어야 한다는 성지의미론 사이의 대립이 워낙 커서 때론 중앙정부의 ‘조정(intervention)’이 필요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복원의 전 과정을 기록해 책자로 발간한 일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보존론’과 ‘의미론’의 논쟁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예컨대 광화문 현판은 1865년 고종 때 중건(重建)된 경복궁의 원형 복원 차원에서 당시에 걸렸던 임태영의 한문 글씨를 내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적 가치 보존론자의 입장이다. 이에 비해 광화문은 서울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문패인 만큼 그 현판을 한글로 써서 세종의 정신도 기리고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도 살리자는 주장도 있다. 전자가 ‘문화유산 헌장’(1997년 제정)의 제1조(보존)를 중시하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제5조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까? 박연(朴堧)의 제안에 따라 찬집(撰集)돼 세종시대의 예악 정비에 큰 영향을 끼쳤고, 각종 악기 제작 등에도 도움을 준 ‘악서(樂書)’에 따르면 “예와 악은 모두 인심에서 나온다(禮樂同出於人心).” 예란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게 하는 약속인데, 그 약속은 처음 시작할 때의 취지(情)를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만약 처음의 취지는 사라지고 형식(法)만 남게 된다면 그런 예는 ‘철사로 만든 옷’처럼 오히려 사람들을 옥죄게 될 것이라는 게 악서의 내용이다.

 

세종 역시 옛것을 복원하는 일 못지않게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는 그때까지 전해 내려오던 우리 음악과 중국 아악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많은 신악(新樂)을 창작했다. 경복궁만 해도 함원전과 교태전 등 많은 건물이 세종 때 세워졌고, 광화문 역시 세종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그저 본받기만 하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예를 잃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예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본 규칙으로 보았는데, 이 때문에 하려고 하는 일의 처음 취지를 담당자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애초 목적을 살려내려고 노력했다.

 

세종이 국가경영을 위한 다섯 가지 예(五禮)를 정비할 때도 가장 중시한 게 예를 만들 때의 처음 취지다. 초상을 치를 때는 슬퍼함이 지나쳐 몸과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절제하라는 게 상례(喪禮)를 만든 취지였고, 제사를 지낼 때도 조상들께 마음으로 감사하고 친척들과 화평하게 지내라는 취지를 살려내는 게 예법을 까다롭게 준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옛것에서 배우되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세종의 열린 생각을 참조해, 문화재의 원형 복원 못지않게 그 복원이 가치 있고 또한 의미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토론하는 문화재 관계자들의 성찰을 기대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70301032430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