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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외교 분쟁 해결한 세종시대 인물들 “팔만대장경 안 주면 침공” 日 협박에도… 국가 간 신뢰 강조한 외교 ‘상상력의 빈곤.’ 영화 ‘나랏말싸미’를 본 후 든 소감이다. 창작물인 영화를 두고 역사 왜곡이니 세종 폄훼니 비판하는 자체가 난센스다. 따라서 온전히 역사적 상상력 자체에 집중해서 봤다. 결과는 실망 그 자체다. 한글 창제에 대한 해석이나 배우의 연기 문제가 아니다. 그 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 고작 그 정도에 그쳤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영화감독이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흉내를 낸 것이 첫 번째 실패 이유다. 어차피 새로울 것 없는 세종과 한글 창제에 관한 것이니, 지난번 영화 ‘사도’처럼, 제작팀이 열심히 공부해서 각색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익숙한, 전혀 새롭지 않은 스토리들이 자주 등장했다.. 더보기
협상가 세종, 왕비의 모친을 상봉케 하다 소헌왕후가 ‘역적’이 된 친정어머니 만날 수 있도록 신하들 설득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물론 큰일이다. 하지만 집안 다스리는 일이 제일 어렵다(齊家最難).” 가정경영이 제일 어렵다는 세종의 이 어록만큼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말은 없는 듯하다. 남녀와 세대를 떠나 심지어 청소년들까지도 가족 간 화합이 어렵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이 점에서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세종의 가정경영이다. 세종은 어떻게 후궁을 8명이나 뒀으면서도 가정불화 없이 평생 아내의 존경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일차적인 이유는 왕비인 소헌왕후의 인품이다. 세종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을 의심하거나 후궁들에 대해 투기하지 않았다(無所疑忌)”고 한다. 심지어 “후궁 중에 왕이 총애하는 이가 있으면 더욱 .. 더보기
세종왕비, 소헌왕후가 보여준 온유함의 힘 소헌왕후 정신적 外傷 극복 비결은, 외조부 큰 사랑· 남편 세종 신뢰 “소헌왕후는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갖게 됐나요?” 여주에 있는 ‘진달래길’, 즉 세종영릉 근처에 있는 진달래 숲길을 걸을 때 어느 분이 한 질문이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 여주로 옮기게 된 과정과 조선왕조에서 왕비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지난주 칼럼에 쓴 도성 대화재사건 때 소헌왕후가 발휘한 리더십 사례는 이곳 답사 코스에서 꼭 들려드리는 이야기다. 이런 질문, 즉 어떻게 그런 인물이 됐느냐는 물음은 대답하기가 녹록지 않다. 결과로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야 하고, 현상의 이면까지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과 ‘열성후비지문’ 등 관련 자료를 샅샅이 살펴봤다. 그 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