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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처럼/세종이야기

[박현모의 '세종 리더십'] 세종이라면 지금 '新삼강행실 프로젝트' 가동

패륜… 뇌물… 性추문… 세종 초기 잇달아 발생

삼강행실도 만들어 어릴때부터 인성 교육

 

"세종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을까요?"



얼마 전 여러 기업 임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보인 추태가 이슈였던 때였다. 그 질문을 한 분은 뉴스를 듣고 '아, 다행히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구나'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대기업은 상무 이상 임원만 2000여명에 이르는데, 그중에서 누가 언제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재위 초반부 세종도 그랬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되는 지신사(知申事) 조서로가 유부녀를 간통했고(세종 재위 5년), 현직 수령의 아내 유감동이 문무 관료 수십명과 섹스 스캔들을 벌여 장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9년). 정승 유정현의 악덕 고리대금 행위(6년)와 병조판서 조말생의 거액 뇌물 수수사건(8년)으로 조정 대신들에 대한 신뢰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뿐만 아니었다. 종친 이군생의 공문서 위조사건(6년), 집현전 관리 권채와 그 부인의 노비 학대사건(9년), 그리고 숱한 부모 구타사건이 줄을 이었다.

어떤 분은 이 시기에 일어난 공직자의 기강 해이와 잇따른 인륜 범죄를 태종의 사망(4년)과 연관 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법가적인' 태종의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세종 시대에 들어 비로소 법 제도가 정비되면서 예전에는 조용히 넘어갔을 일들이 새삼 범죄로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세종은 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했을까? 그는 우선 일련의 사태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모름지기 국가 기강은 조정으로부터 시작되고, 신민들의 윤리는 국왕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왕 자신이 잘못 다스려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있는 그대로 직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다음으로 그는 상엄하관(上嚴下寬)의 원칙에 따라 판결했다. 앞서 말한 지신사 조서로의 간통 사건에 대해 그는 "그 직분이 왕명의 출납을 맡은 자로 이처럼 강상 범죄를 저질렀으니 용서할 수 없다"면서 경상도 영일로 유배 보냈다. 반면 국왕의 실정을 비판한 강원도 백성 조원은 "무지한 백성이 내가 잘못 다스린다고 비판한 것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과 같은 것이니 차마 어찌 벌을 주겠느냐"며 무죄 석방하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유감동 X파일 사건'에 대한 세종의 판단과 조치이다. "이 여자를 더는 추국(推鞫)하지 마라. 이미 간부(姦夫)가 십수명 나타났고, 또 재상까지 끼어 있으니 일의 대체(大體)가 벌써 다 이루어졌다"며 수사를 중지시켰다. 이 문제를 계속 수사할 경우 "뒷사람의 감계(鑑戒ㆍ거울)"로 삼는 데서 얻는 이익보다 공직자들의 신뢰가 실추됨으로써 오는 손실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사태는 거기에서 수습되지 않았다. 재위 10년 때 더 큰 인륜 범죄가 발생했는데, 김화의 살부(殺父)사건이 그것이다. 경상도의 김화라는 자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보고를 받은 세종은 "어떻게 자식이 아비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이것은 필시 내가 덕(德)이 없는 까닭이로다"라고 탄식했다. 이어서 곁의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허조는 처벌 수위를 높여서 함부로 인륜 범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먼저 가르친 다음에 그 행동을 보고 처벌하라

 

이에 대해 변계량은 "이런 일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컨대 '효행록' 등의 서적을 널리 반포하여 항간에서 이를 항상 읽고 외게 하여 점차로 효제와 예의의 마당으로 들어오도록 하소서." 좋은 사례를 많이 들려주고 자주 말하게 하여 그런 생각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도록 하자는 얘기였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통한 교화 방법을 세종은 채택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삼강행실도'이다. 부모에게 효도한 사례 등 100여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와 훌륭한 사례를 그림을 곁들여 제작해서 전국에 배포하게 했다.

맨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요즘 같은 범국가적인 도덕적 해이 사태에 세종이라면 어떻게 대응할까? 그는 물론 사회 지도층 인사의 부정부패와 성도덕의 문란을 엄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 반드시 지켜야 할 책무, 그리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덕목 등을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알게 할 것이다.

"미리 경계치 아니하고 일 이뤄지기를 바라는(不戒視成) 것을 포(暴)라 하고, 가르치지도 아니하고 죽이는(不敎而殺) 것을 학(虐)이라 한다"는 말처럼 그는 먼저 가르친 다음에 그 행동을 보고 상벌을 뒤에 베풀어야만 '포학한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세종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훌륭한 사례를 편찬해 많은 사람에게 인성 교육을 하는 '신(新)삼강행실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일보 2013.05.18 ]